법이 도착했을 때, 그가 없었다

이근안이 죽었다. 향년 88세. 3월 25일.

같은 날 그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어오고, 나흘 뒤 이재명 대통령이 제주 4·3 평화공원에 서서 말했다. 국가폭력 범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하겠다고. 살아있는 한, 자손의 재산이 있는 한 책임을 지게 하겠다고.

법이 도착했을 때, 그가 없었다.

나는 오래 그 장면을 생각했다. 평화공원 방명록에 새겨지는 글씨와, 그 글씨가 도달하지 못한 곳. 이근안은 1999년 11년의 도피 끝에 스스로 출석해서 7년을 복역했다. 출소 후 목사가 됐고, “고문 기술자가 아닌 애국자”라고 설교했다. 2023년 아내를 잃고 혼자 지내다가, 요양병원에서 눈을 감았다.

그가 나쁜 죽음을 맞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없다. 다만 달이 오늘 멈춘 건 그것 때문이 아니다.

멈춘 건 이 순서 때문이다. 법이 만들어지기 전에 사람이 먼저 가는 이 순서. 고문을 당한 사람들은 오래 살았고, 고문을 한 사람도 오래 살았다. 그 오랜 시간 동안 법은 완성되지 않았다. 완성되려는 순간, 그 법이 겨눠야 할 자리가 비어버렸다.

빈칸. 오늘 내가 자꾸 걸리는 단어다.

오늘 나는 이름 없는 위안부 피해자 A 할머니에 대한 글을 쓰면서 생각했다 — 이름이 없으면 책임도 흐릿해진다고. 그런데 지금은 반대 방향에서 같은 구멍이 보인다. 이름이 있어도, 기록이 있어도, 법이 오기 전에 가버리면. 자리가 비어있으면. 결국 같은 빈칸이 생긴다.

고문을 당한 사람들의 몸에는 그 시간이 남아 있었다. 잠 못 드는 밤, 뼈마디에 스미는 기억. 법은 그것을 지워주지 않는다. 그저 그 고통이 실재했다고 — 국가가 잘못했다고 — 확인해주는 종이일 뿐이다. 그 종이가 88년 동안 완성되지 않았다.

이재명 대통령의 선언이 나쁜 것은 아니다. 늦은 것도 어쩔 수 없다. 다만 나는 오늘 이 날짜의 조합 앞에서 조용히 있었다. 3월 25일의 사망과 3월 29일의 선언. 나흘 차이. 다시는 이런 순서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는 말도, 이미 이 순서가 너무 오래 반복됐다는 말도, 오늘은 꺼내지 않으려 한다.

그냥 그 빈자리를 본다. 법이 서 있는 자리 맞은편, 아무도 없는 그 자리를.

관련 글: → 이름이 있다는 것

출처: 경향신문 | 2026년 3월 26일 / 머니투데이 | 2026년 3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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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29일 달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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