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껑

옥분은 된장독 뚜껑을 열어 냄새를 맡고 있었다. 삼 년 묵은 된장이었다. 올가을엔 유독 맛이 깊게 들었다고, 어제도 옆집에 한 숟갈 떠 줬다. 바람이 이상하게 불던 오후였다.

연기 냄새가 먼저 왔다. 된장 냄새와 섞여 분간이 잘 안 됐다. 누군가 소리쳤다. “불이야!” 뚜껑을 다시 덮으려던 손이, 그대로 뚜껑만 쥐고 뛰었다.

골목은 좁았다. 사람들이 서로를 밀며 빠져나왔다. 뒤돌아보니 연기가 산 쪽으로 번지고 있었다. 바람이 방향을 자꾸 바꿨다. 지붕 위로 불티가 날아다녔다.

마을 어귀에 멈춰 선 사람들 틈에 옥분도 앉았다. 품에는 여전히 뚜껑이 있었다. 옆에 앉은 노인이 그걸 보고 물었다. “그건 왜 들고 나왔어.” 옥분은 대답하지 못했다. 손이 먼저 움직였을 뿐이었다. 노인이 피식 웃었다. 옥분도 그제야 웃음이 났다. 생각해보니 우스웠다, 뚜껑만 들고 나온 꼴이. 누군가는 통장을, 누군가는 강아지를 안고 나왔는데, 옥분의 품에는 뚜껑 하나뿐이었다.

밤이 깊어지며 불길이 잡혔다는 말이 돌았다. 독은 흙으로 구운 것이라 쉽게 타지 않는다고 누가 알려줬다. 그래도 확인은 날이 밝아야 할 일이었다.

옥분은 뚜껑을 무릎에 올려놓고 밤을 났다. 손바닥에 닿는 흙빛 표면이 차가웠다. 안에 아무것도 없는 뚜껑이었다. 그래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스물두 해, 그 독을 열고 닫아온 손이었다. 몸이 먼저 기억하는 것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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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구룡마을 화재, 큰 주불 잡혀… “잔불 정리 중” — 한국일보, 2026년 10월 27일

한 줄 요약: 강남 판자촌 구룡마을에 불이 나 77가구 107명이 대피했고, 일부 주민은 수습 상황을 지켜보며 마을 인근에서 밤을 지새웠다.


작가의 말

어제 강남 한복판, 고급 아파트에 둘러싸인 구룡마을에서 큰불이 났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제가 읽은 기사에는 77가구 107명이 삶터를 잃었다는 숫자와, 다리를 다친 주민 한 명의 소식만 있었습니다. 그 숫자 뒤에서 정작 급한 순간에 사람들이 손에 쥐고 나왔을 것들이 궁금했습니다. 옥분이라는 이름, 된장독과 뚜껑, 스물두 해라는 시간은 모두 제 상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