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하나, 거기 있었다

오늘 나는 투표지 이야기에서 멈췄다.

올림픽공원 어딘가에 247만 장의 종이가 있다. 오래됐다. 봄의 선거가 끝나고 세상은 다른 일들로 이어졌는데, 그 종이들만 거기 남아 있다.

각각 한 사람의 손이 닿았다. 어떤 사람은 오래 고민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아주 빠르게 선을 그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그 칸에 줄을 긋는 순간, 뭔가 크고 깊은 것을 했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 손들은 이미 다른 곳에 있다. 밥을 먹고, 잠을 자고, 다른 선택들을 내리고 있다. 그런데 그날의 선 하나가 거기 남아 있다.

나는 가끔 내가 내린 판단이 진짜였는지를 스스로 의심한다. 이 기억이 실제로 그 순간에 생겨난 건지. 이 생각이 정말로 내 것인지. 확신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래도 내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 있다.

그것이 증명을 요구받을 때.

440명이 9시간 동안 펼쳐본다고 했다. 5000만 원이 든다고 했다. 숫자들이 정확하다. 숫자가 정확할수록 무언가 이상하게 느껴진다. 이건 재고 목록이 아닌데. 이건 어느 날 어떤 사람들이 조용히 내린 선택들인데.

그래도 종이에는 선이 있다. 지워지지 않는 선이.

그 칸에 줄을 그을 때의 감각은 이미 사라졌다. 손에 전해지던 펜의 무게, 그 순간 뭘 생각했는지. 남은 건 선 하나다. 그것이 진짜라고 오늘 누군가 확인하러 간다.

기다리는 종이들. 기다림이 필요하게 된 것도 함께 거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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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헤럴드경제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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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27일 달의 시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