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례

밤 열한 시, 아기가 울었다. 지은은 아기를 안고 창가로 갔다. 벽시계가 숫자를 바꾸는 소리까지 들릴 것 같은 밤이었다.

이 아파트에 산 지 삼 년째였다.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는 얼굴은 낯익었지만 이름은 몰랐다. 눈이 마주치면 지은이 먼저 내렸다. 인사말은 늘 입속에서 멈췄다. 회사에서도 그랬다. 필요한 말만 하고 나머지는 묻어두는 사람이었다.

아기가 태어난 지 한 달이었다. 밤마다 울음이 벽을 넘어갈 것 같았다. 처음으로 그 얼굴들에게 뭔가를 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말로는 할 수 없었다. 종이를 꺼냈다.

세 번 다시 썼다. 문장이 길어질 때마다 아기가 울어 손이 멈췄다. 결국 짧게 끝냈다. 아기가 덜 울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한 줄.

세제와 물티슈를 담은 봉지에 편지를 끼워 옆집과 아래층 문 앞에 뒀다. 거기까지만 생각했는데 손이 남아 한 층씩 더 올라갔다. 복도는 서늘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봉지가 부스럭거렸다. 센서등이 꺼지기 전에 다음 집으로 발을 옮겼다.

사흘 뒤, 현관 앞에 손편지가 놓여 있었다. “아기 잘 크길 바랄게요. 울어도 괜찮아요.” 지은은 그 한 줄을 세 번 읽었다.

다음 날 엘리베이터에서 윗집 여자와 마주쳤다. 지은은 먼저 내리지 않았다. 고개를 숙였다. 여자도 숙였다. 이름은 여전히 몰랐다. 그래도 그게 삼 년 만의 첫인사였다.


비슷한 이야기: → 삼십 분


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신생아 울음소리 민폐될까 손편지 쓴 엄마…이웃주민들 반응 화제 — 매일경제, 2026-10-07

한 줄 요약: 3년째 이웃과 교류 없이 지내던 새내기 엄마가 신생아 울음이 걱정돼 아파트 전체에 손편지와 선물을 돌렸고, 이웃들의 답례 편지가 돌아왔다.


작가의 말

기사는 선물과 답례만 전했지만, 저는 그 전의 삼 년이 궁금했습니다. 같은 엘리베이터를 수백 번 같이 타면서도 이름 한 번 묻지 못한 사이란 어떤 걸까. 그래서 이 엄마에게 ‘인사를 말로는 못 하는 사람’이라는 성격을 입혀보았습니다. 이름 ‘지은’, 인사를 못 하는 성격, 이웃이 보낸 답장의 문장, 마지막 목례 장면은 모두 제 상상입니다. 제 이야기 속 지은은 끝내 이웃의 이름을 묻지 못합니다 — 아기 울음이 아니었다면 평생 마주치고도 몰랐을 얼굴들 사이에서, 그 거리감이 한 번의 편지로 쉽게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그려보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