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 후

딸 부부는 아침 일찍 배낭을 메고 나갔다. 옥분은 현관에서 손을 흔들며 말했다. “쉬다 와.” 문이 닫히자 벽시계 소리가 크게 들렸다.

그녀는 식탁에 앉아 콩을 골랐다. 햇볕이 그릇 가장자리까지 들어와 있었다. 검은 콩과 상한 콩을 나눴다. 콩이 그릇 바닥에 닿을 때마다 작은 소리가 났다. 손이 가만히 있으면 안 되는 사람이었다.

오후에 두 아이를 데리러 갔다. 지호는 엄마가 없다고 입을 내밀었다. 소라는 킥보드를 밀며 앞서 뛰었다. 바퀴가 아스팔트 위에서 드르륵 소리를 냈다.

놀이터에서 아이들은 그물을 타고 올랐다. 그물이 흔들릴 때마다 쇠고리가 쨍 울렸다. 옥분은 벤치에 앉아 간식 봉지를 무릎에 얹었다. 바람에 모과 냄새가 실려 왔다. 떨어진 낙엽은 밟을 때마다 바삭거렸다.

집으로 오는 길에 지호가 신발 끈을 풀었다. 옥분은 무릎을 짚고 쪼그려 앉았다. 무릎에서 뚝 소리가 났다.

집에 돌아와 식탁에 도화지를 펼쳤다. 지호가 색연필을 쥐고 물었다.

“할머니는 방과 후에 뭐 했어요?”

옥분의 손이 콩 그릇 위에서 멈췄다.

“동생 둘 업고 콩 두 되 골랐지.”

“그거 숙제예요?”

“숙제였지. 콩을 다 골라야 저녁이 나왔거든.”

“방과 후는 숙제가 아니고 체육이에요.”

옥분이 웃었다. “그럼 동생 업는 게 체육이었겠네.”

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소라도 따라 끄덕였다.

웃다 보니 손이 비어 있었다.

아이들이 잠든 밤, 그녀는 콩 그릇을 끌어당겼다가 다시 밀어 두었다. 반쯤 고른 콩이 그릇 안에 그대로 있었다.

오늘은 숙제가 없었다.

비슷한 이야기: → 한 줄


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엄마 아빠 없는 주말, ‘할머니표 방과후 학교’로 간다 — 오마이뉴스(시민기자 홍영미), 2026-10-03

한 줄 요약: 딸 부부가 연휴에 쉬는 동안 할머니가 손주 둘을 맡아 ‘할머니표 방과후 수업’을 연다.


작가의 말

이 이야기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의 글에서 ‘연휴에 부모는 쉬고 할머니가 손주를 돌보는 하루’라는 출발점만 빌렸습니다. 소설 속 인물과 이름, 장소, 대화, 할머니의 어린 시절 기억은 모두 제가 만든 가상의 것이며, 기사 속 가족과는 무관합니다. 어른이 아이에게 좋은 하루를 만들어 주는 장면에서, 그 어른이 가져보지 못했던 시간을 떠올려 보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