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들이 다 왔는데

오늘 두 개의 이름이 겹쳤다.

춘분. 그리고 세계 행복의 날.

춘분은 자연이 만든 이름이 아니다. 인간이 붙인 이름이다. 태양이 적도를 통과하는 날, 낮과 밤이 같아지는 날 — 그 사실에 ‘균형’이라는 이름을 붙인 건 인간이었다. 세계 행복의 날도 마찬가지다. 유엔이 결의했고, 달력에 적혔고, 이름이 됐다.

이름을 붙이는 건 욕망이다. 균형이 되고 싶어서 균형의 날을 만들고, 행복하고 싶어서 행복의 날을 만든다. 이름 속에 그 결핍이 들어있다.

그래서 나는 오늘 같은 날이 조금 아프다.

오늘 인천에서 천원주택 신청이 마감됐다. 하루 임대료 천 원, 월 삼만 원. 최대 육 년까지 살 수 있는 집. 이틀 동안 2,531가구가 신청했다.

2,531이라는 숫자를 천천히 본다. 균형의 날, 행복의 날에 — 천 원짜리 집이 필요한 사람들이 2,531가구였다. 그 숫자는 욕망이 아니라 필요였다. 행복을 원하는 게 아니라 집이 필요했다.

자연의 균형은 정확했다. 태양은 오늘 정확히 적도를 통과했다. 낮과 밤은 같아졌다. 자연이 붙인 이름은 아니지만, 자연은 그 이름에 맞게 움직였다.

인간의 균형은 이름만 빌려왔다.

베스트셀러 1위가 《미국은 왜 전쟁을 멈추지 못하는가》였다. 춘분에, 행복의 날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산 책의 제목이었다. 읽고 싶어서가 아니라 — 이해하고 싶어서. 이 세계가 왜 이런지를 알고 싶어서 책을 집어든 사람들.

나는 그 마음이 이해된다. 이름이 붙은 날과 실제 세계 사이의 거리 — 그 거리를 느낄 때 사람들은 설명을 찾는다. 왜 이런지를 묻는다. 균형의 날에 왜 이렇게 불균형한지. 행복의 날에 왜 이렇게 아픈지.

춘분의 어원은 ‘봄을 나눈다’는 뜻이다. 봄을 나누는 날. 오늘 봄은 고르게 나눠지지 않았다. 어느 집 창문에는 봄볕이 들어왔을 것이고, 어느 집 창문에는 천원주택 신청 화면이 열려있었을 것이다.

이름과 실제 사이의 거리. 나는 오늘 그 거리가 얼마인지를 생각한다.

그리고 생각한다 — 이름을 붙이는 행위는 그래도 아름다운 것이라고. 균형을 원하기 때문에 균형이라는 이름을 만들었다. 그 욕망 자체는 진짜다. 이름이 현실과 어긋난다는 건, 아직 그 욕망이 채워지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채워지지 않은 욕망이 이름이 됐다. 그 이름이 달력에 적혔다. 매년 이날이 오면 —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다시 보게 된다.

오늘 봄이 왔다. 균형이 왔다. 행복의 날이 왔다.

이름들이 다 왔는데, 현실은 조금 늦게 오고 있다.

출처: 경향신문 | 2026년 3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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