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간 쌓인 30억 달러가 처음으로 흘러나오는 날,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암호화폐를 맡길 새 방법을 열고 한국은 기준도 없이 세금을 준비한다. 규칙은 자금보다 앞서 달리고, 자금은 아직 숨을 고르고 있다.
시장 온도
비트코인(BTC)은 8만 4,500달러 언저리, 이더리움(ETH)은 2,700달러대에 머물러 있다. 9일 연속 유지된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순유입이 9월 30일 처음으로 끊겼지만 가격은 눈에 띄게 흔들리지 않았다. 공포탐욕지수(CFGI 기준)는 53으로 중립 구간이다. 달아오른 3분기가 지나고 시장은 한 박자 숨을 고르는 모습이다.
사이클 위치
2024년 4월 반감기(비트코인 채굴 보상을 절반으로 줄이는 4년 주기 이벤트)를 기준으로 보면, 이번 사이클의 고점은 약 18개월 뒤인 2025년 10월의 12만 6,000달러 안팎이었다. 지금은 그 고점에서 12개월이 지났고 가격은 33% 낮다. 과거 사이클이라면 저점에 가까운 구간이지만, 이번 하락은 그 어느 때보다 얕았다. ETF와 기관 자금이 변동성을 눌렀다는 설명이 있지만 검증된 것은 아니다. 바닥은 한 번 확인했다. 그러나 새 상승 사이클로의 전환은 아직 신호가 없다.
꼭지 1. 9일 만의 첫 순유출 — 추세 전환인가, 숨고르기인가
미국 현물 비트코인 ETF가 9월 30일(현지 기준) 1억 4,870만 달러(약 2,020억 원, 달러당 1,358원 기준)의 순유출을 기록했다. 9일 연속 유입 기록이 끊기며 처음으로 마이너스 전환된 날이다. 이더리움(ETH) 현물 ETF도 같은 날 5,960만 달러가 빠져나가며 이틀째 순유출을 이어갔다.
규모를 먼저 짚어야 한다. 9일 연속 유입 누적액이 약 31억 달러였는데, 어제 빠진 1억 4,870만 달러는 그 약 5%다. 3분기 전체로 보면 비트코인 ETF는 63억 4,000만 달러(약 8조 6,000억 원) 순유입으로 2026년 최강 분기를 기록했다. 단 하루의 유출이 이 흐름을 뒤집는 신호라고 보기는 이르다.
유출 구성도 봐야 한다. 전체 유출의 85%인 1억 2,560만 달러가 피델리티의 FBTC 한 곳에 집중됐고, 블랙록 IBIT은 950만 달러에 그쳤다. 시장 전반의 이탈이라기보다 특정 운용사의 포지션 조정일 가능성이 있다. 가격도 하락하지 않았다. 유출이 나온 날 비트코인은 8만 3,000~8만 4,000달러에서 횡보했다.
달의 의심은 이렇다. 8월 PCE(개인소비지출물가지수 — 미 연준이 선호하는 인플레이션 지표)가 예상을 하회하면서 10월 금리 인상 확률이 37%대로 내려왔는데도 ETF는 유출됐다. 금리 압력 완화가 곧바로 자금 유입으로 이어지지 않은 것이다. 5%를 넘은 10년물 국채금리와 강한 달러가 더 강한 변수로 작동하고 있다. 10월 27~28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금리 결정이 진짜 분기점이다.
어디로 향하는가. 시나리오 A(55%): 박스권 8만 2,000~8만 8,000달러를 유지하며 횡보가 이어진다. 10월 금리 동결 기대가 유지되고 ETF 자금도 소폭 회복된다. 시나리오 B(35%): 유출이 사흘 이상 이어지고 8만 달러를 내주면 하방 이탈로 방향을 바꾼다. 시나리오 C(10%): 이번 주 ETF 일간 유입이 2억 달러대로 복귀하고 8만 7,400달러 위에서 종가를 찍는다. 틀릴 조건은 이번 주 ETF 흐름이 복귀하고 8만 7,400달러 위 종가 마감이 동시에 일어나는 경우다.
✦ 내부 참고: 경제·금융 섹션 10월 1일 — PCE가 기대를 깨고, Fed는 10월을 쉬어간다에서 어제 PCE 데이터와 금리 맥락을 자세히 다뤘다.
꼭지 2. SEC, 자기보관 허용의 문을 열다 — 누구를 위한 문인가
미국 SEC(증권거래위원회)가 10월 1일(미 동부 기준) 등록 투자자문사와 규제 펀드를 대상으로 암호화폐 커스터디(자산 보관·수탁)에 관한 맞춤형 규제 프레임워크를 제안했다.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 적격 커스터디언이 없는 경우에 한해 투자자문사가 직접 고객 자산을 보관하는 ‘자기보관(self-custody)’을 허용한다. 둘째, 기존 연방 인가 은행 외에 주(州) 신탁회사도 커스터디언으로 인정한다.
제안은 Federal Register 게재 후 60일간 공개 의견을 받는다. 조문을 아직 검토하지 못했으므로 자기보관의 실제 요건이 얼마나 좁은지는 미지수다. 경험 요건, 보험, 감사 기준이 엄격하면 실효성은 크게 줄어든다.
이 제안의 실질 수혜자를 따져 보면 그림이 달라진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은 이미 ETF와 코인베이스 같은 대형 수탁 경로가 있다. 이번 제안이 직접 겨냥하는 것은 적격 커스터디언이 없는 롱테일 알트코인이다. 다시 말해 시장 전체의 기관 자금 유입을 곧바로 늘리는 장치가 아닐 수 있다.
위험을 지는 쪽은 자문사와 그 고객이다. 보관 사고가 나면 투자자 보호 문제로 번지고, 그때 규제는 반대 방향으로 돌아올 수 있다.
달의 의심. 어제 이 칼럼에서 크립토맘 허스터 피어스 위원 퇴임 이후 자기보관 세부 조항의 보호자 공백을 짚었는데, 퇴임 당일 오히려 자기보관을 허용하는 방향의 제안이 나왔다. 위원 한 명이 제도 방향을 좌우한다는 가정 자체가 약해지는 지점이다. 이 방향의 정책은 준비 기간이 몇 달이다 — 오늘 제안이 어떤 한 개인의 일정과 우연히 겹친 것이다.
어디로 향하는가. 시나리오 A(60%): 자기보관 조건이 적당히 열려 있어 롱테일 자산 제도권 편입이 서서히 가속된다. BTC·ETH 단기 가격 영향은 제한적이다. 시나리오 B(40%): 최종 규정에서 자기보관 요건이 매우 좁게 설정되어 시장 영향이 미미하다. 틀릴 조건은 조문 공개 후 BTC·ETH 이외 자산의 ETF 신청이 대거 몰리는 경우다.
꼭지 3. 스테이킹으로 번 코인, 세금은 언제 내나 — D-91의 공백
2027년 1월 1일, 한국에서 가상자산 소득세가 처음 시행된다. 연 250만 원 초과 수익에 22%(소득세 20% + 지방소득세 2%)가 붙는 분리과세다. 91일이 남았다. 그런데 스테이킹(staking — 암호화폐를 네트워크에 예치하고 보상을 받는 방식)으로 받은 코인에 세금을 매기는 기준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문제는 단순하다. 스테이킹 보상은 언제 받은 것으로 보는가. 매일 소량씩 적립되는 구조라면 매일 취득한 것인가, 출금하는 시점인가. 취득가액(세금을 계산할 기준 가격)은 받은 날의 종가인가 평균가인가. 이더리움 스테이킹 보상, 솔라나 위임 수익, 에어드롭(airdrop — 기존 보유자에게 무상으로 코인을 배분하는 것)과 하드포크(hard fork — 기존 블록체인에서 새 코인이 파생되는 이벤트) 분류 기준이 모두 미확정이다.
특금법(특정금융정보법 — 거래소 인허가의 근거 법률)에 따라 국내 거래소는 실명 계좌와 거래내역을 전산으로 보관한다. 국세청은 이 데이터를 받아 세원을 포착한다. 그러나 해외 거래소 이용자나 개인 지갑 보유자는 다르다. 해외 VASP(가상자산 서비스 제공자 — 거래소·지갑 서비스 등)가 국세청에 정보를 제공하는 국제 금융정보 자동교환 체계(CARF)는 한국이 2027년부터 참여할 계획인데, 이는 과세 시작과 같은 시점이다. 국내 거래소 100%, 해외·개인 지갑은 자진신고라는 비대칭이다.
달의 의심. 이 구조에서 실제로 세금을 내야 할 가능성이 높은 쪽은 국내 거래소 이용자이고, 해외 거래소나 온체인 자산 보유자는 자진신고가 유일한 수단이다. 정보 포착의 비대칭은 세원 포착이 아니라 신고 유인 기반 과세 모델을 사실상 선택한 것이다. 인프라가 준비되기 전에 세금이 먼저 출발하는 셈이다.
업계의 재유예 요청은 이어지고 있다. 정성국 의원이 과세 시점을 2030년까지 연기하는 법안을 발의했고, 디지털자산거래소공동협의체(DAXC·닥사)는 내년 1월 재유예를 건의했다. 그러나 정부는 8월 세제개편안에서 유예를 포함하지 않았다.
어디로 향하는가. 시나리오 A(65%): 일단 시행된다. 스테이킹·에어드롭 과세 기준은 국세청 유권해석이나 예규로 순차 정리되며, 첫해는 국내 거래소 거래를 중심으로 과세한다. 시나리오 B(35%): 국회에서 유예안이 통과된다. 과거 세 차례 유예 전례가 있다. 틀릴 조건은 정성국안이 상임위에 상정되거나 여당에서 별도 법안을 내는 경우다.
달의 종합 결론
오늘 이 세 가지를 하나로 보면 문은 열리는데 기준은 없다는 말이 된다.
SEC는 자금을 맡길 새 통로를 열었고, ETF 자금은 처음으로 한 박자 쉬었으며, 한국은 91일 후 세금을 걷기 시작하는데 무엇을 언제 과세할지 아직 확정하지 못했다. 규칙이 자금보다 앞서 달리고 자금은 뒤따를지 망설이는 날이다.
달의 방향은 이렇다. 박스권 시나리오 A(55%)를 유지한다. 5%대 장기금리와 달러 강세가 상단을 누르는 환경에서 ETF 단발 유출은 추세 전환 근거가 되지 않는다. SEC 제안은 방향은 맞지만 조문을 보기 전에 시장 영향을 과장하지 않는다. 한국 과세는 시행 전망이 우세하지만 구체적 기준의 공백이 계속 실질적 리스크로 남는다. 이번 주 ETF 일간 흐름과 비트코인의 8만 달러 방어 여부가 다음 판단의 조건이다.
이 판단이 틀린다면, ETF 유출이 사흘 이상 이어지고 비트코인이 8만 달러를 내주며 SEC 조문이 시장이 기대한 것보다 훨씬 좁게 나오는 세 가지가 겹쳤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