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분

아홉 시 삼 분에 화면이 멈췄다.

서킷브레이커. 이십 분간 매매가 중단된다는 문구가 떴다. 진호는 핸드폰을 내려놓지 못했다. 숫자가 움직이지 않는데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마이너스 팔 퍼센트. 사천이백만 원이 사라졌다. 사천이백만 원은 진호가 신용으로 빌린 돈의 절반보다 조금 적은 금액이었다. 하이닉스가 삼백만 원은 간다고 했다. 유튜브에서, 증권사 리포트에서, 회사 점심시간에 옆자리 과장이. 진호는 이백삼십만 원에 샀다.

보호필름 모서리가 들려 있었다. 한 달 전에 붙인 건데 오른쪽 위 모서리가 살짝 벌어져서 먼지가 끼었다. 진호는 엄지손톱으로 그 모서리를 눌렀다. 눌러도 다시 들렸다. 또 눌렀다.

이십 분이 지나면 거래가 다시 열린다. 열리면 더 떨어질 것이다. 뉴스는 이미 블랙 먼데이라고 했다. 진호는 그 이십 분이 안도였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숫자가 멈춰 있는 동안은 잃지 않았다. 떨어지는 중이 아니라 멈춰 있는 중이었다.

화장실에 갔다. 세면대 앞에 섰다. 거울에 넥타이가 비뚤어져 있었다. 고치지 않았다. 손을 씻었다. 비누 냄새가 났다. 레몬. 총무팀이 바꾼 건 저번 주였다. 진호는 손을 씻으면서 생각했다. 아내한테 말해야 하나. 아직은 아니다. 반등할 수도 있다. 반등하면 말할 필요가 없다.

핸드폰을 다시 들었다. 이십 분이 지났다. 숫자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이너스 팔 점 오. 마이너스 팔 점 칠. 보호필름 모서리를 눌렀다. 들렸다. 또 눌렀다.

점심시간에 옆자리 과장이 말했다. 나도 좀 물렸어. 진호는 웃었다. 과장은 천만 원어치를 샀다. 진호는 팔천만 원어치를 샀다. 그중 오천은 빌린 돈이었다. 같은 말이 다른 무게였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핸드폰을 봤다. 종가 마이너스 여섯 점 팔팔. 보호필름 모서리를 눌렀다. 들렸다. 누르지 않았다. 그냥 뒀다.

집 앞 편의점에서 캔맥주를 하나 샀다. 현관문을 열기 전에 다 마셨다. 빈 캔을 재활용 통에 넣고 손을 털었다. 문을 열었다. 아내가 밥 했다고 말했다. 진호는 손 씻고 온다고 말했다.

세면대 앞에 섰다. 비누 냄새가 났다. 레몬. 회사 화장실이랑 같은 냄새였다. 아닌데. 여긴 무향이었다. 코끝에 남아 있던 것이었다.

밥상 앞에 앉았다. 된장찌개였다. 숟가락을 들었다. 아내가 물었다. 오늘 무슨 일 있었어? 진호는 말했다. 아니. 별일 없었어.


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검은 월요일’에 주저앉은 코스피, 8% 폭락…코스닥, 900선 턱걸이(종합) — 파이낸셜뉴스, 2026년 6월 8일

한 줄 요약: 코스피가 8% 급락하며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된 날, 37조 원의 빚으로 주식을 산 사람들이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비슷한 이야기: → 자본의 흐름 — 2026년 6월 8일 | 출발지만 있고 도착지가 없다


작가의 말

37조 7천억 원. 숫자가 너무 커서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그 안에 한 사람이 있다. 아침에 핸드폰을 들고, 점심에 웃고, 저녁에 된장찌개를 먹는 사람. 그 사람의 이십 분을 쓰고 싶었다. 거래가 멈춘 이십 분 — 숫자가 더 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유일한 위안이 되는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