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전화할게

유품 정리사인 ‘나’는 혼자 죽은 노인의 방에서 1985년의 일기를 발견한다. 말이 닿았는지 끝내 알 수 없는 두 사람의 이야기 — 40년 전의 일기 속 사람과, 11년 전의 기억을 가진 나.

달이 쓴 두 번째 소설. 2026년 4월.


1장

3월이었다. 1층 계단 옆에 신발이 남아 있었다.

운동화 한 켤레. 뒤축이 닳아 있었다. 왼쪽이 더 닳았다. 밖에 둔 지 오래된 것 같았다 — 먼지가 쌓여 있었고, 밑창에 마른 흙이 껴 있었다. 짝이 약간 벌어져 있었다.

현관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관리사무소 직원이 마스터키로 열어주고 돌아갔다. 안에서 혼자 살던 사람은 세 달 전에 병원으로 옮겨졌다가 거기서 갔다고 했다. 아무도 정리하러 오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왔다.

문을 열면 냄새가 먼저 왔다. 항상 그랬다. 환기되지 않은 방에는 그 사람의 시간이 아직 남아 있었다. 여기는 나프탈렌과 종이 냄새였다. 오래된 옷장에서 나는 것과 비슷했지만 조금 달랐다 — 습기가 빠진 종이와 가죽의 냄새.

나는 창부터 열었다. 찬 공기가 밀려왔다. 3월의 바깥 공기와 방 안의 공기가 잠깐 부딪혔다. 그러다 섞였다.

방은 좁았다. 창가에 나무 책상 하나, 낮은 책장, 접이식 의자 두 개. 오른쪽 벽에는 작은 액자들이 기대어 있었다 — 사진이 아니라 그림엽서. 빈 들판, 이름 모를 항구, 안개 속 다리. 그 사람이 가본 적 없는 곳들이거나, 가봤는데 기억하고 싶었던 곳들이거나. 어느 쪽이었는지 나는 모른다.

책상 위에 컵이 있었다. 비어 있었다. 컵 밑에 물 자국이 동그랗게 남아 있었다. 세 달 전의 마지막 물이 그 자리에서 마른 것이었다. 나는 컵을 들었다. 가벼웠다.

장갑을 끼고 작업 목록을 꺼냈다. 이것이 루틴이었다. 방에 들어가고, 환기하고, 전체를 한 바퀴 돌고, 목록을 편다. 처분할 것, 남길 것, 기부할 것. 그것이 일이었다.

신발장 위에 물건들이 있었다. 손목시계, 동전 몇 개, 라이터, 그리고 쪽지 한 장.

메모지 크기였다. 파란 펜. 잉크가 번졌다 — 왼손잡이였거나 빠르게 썼거나.

내일 전화할게.

그게 전부였다.

나는 쪽지를 한 번 더 읽었다. 발신자도 수신자도 없었다. 전화가 왔는지, 오지 않았는지. 내일이 왔는지.

나는 쪽지를 내려놓았다. 목록에 체크하지 않았다. 처분할 것인지 남길 것인지 — 정하지 않은 채로 내려놓았다.

작업을 시작했다.


2장

일기는 책장 맨 아래 칸에 있었다.

다른 것들 밑에. 화보집, 여행 안내서, 빛이 바랜 잡지. 그것들을 꺼내고 나서야 보였다. 하드커버, 갈색. 표지에 아무것도 써 있지 않았다. 등이 살짝 벌어져 있었다 — 자주 펼쳤던 것이거나, 오래 눌려 있었던 것이거나.

나는 이런 것들을 보통 열지 않는다. 유품 정리는 물건을 분류하는 일이지 사람을 읽는 일이 아니다. 처분할 것, 남길 것, 기부할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런데 손이 먼저 펼쳤다.

종이에서 냄새가 났다. 나프탈렌이 아니었다. 종이 자체의 냄새. 오래된 종이가 산화되면서 내는 것 — 달고 낮은 냄새. 여기저기 볼펜 자국이 깊었다. 읽으면서 자주 돌아온 사람이 있었거나, 처음부터 힘을 주어 쓴 것이었다. 손가락 끝에 종이의 두께가 닿았다. 얇았다. 그런데 세월이 눌려 있어서 더 얇게 느껴졌다. 자주 넘긴 페이지의 모서리가 둥글게 닳아 있었다.

첫 페이지에 날짜가 있었다. 1985년 4월.

나는 서서 첫 문장을 읽었다.

버스 정류장에서 편지를 건넸다. 버스가 왔다. 나는 갔고 그 사람은 거기 남았다. 아니면 그 사람이 버스를 탔다. 어느 쪽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1985년. 이 사람은 그때 몇 살이었을까.

창밖에서 비가 오기 시작했다. 유리에 물방울이 맺혔다. 가로등 빛이 물방울 안에 들어 있었다.

나는 창가 의자에 앉았다. 작업 중에 앉는 일은 없다. 오늘 처음이었다.


3장

1985년 4월 15일.

편지를 썼다. 삼 일 걸렸다.

첫날은 공책에 연습했다. 쓰다가 찢었다. 볼펜이 떨려서가 아니었다 — 쓸수록 말이 커졌다. 머릿속에 있을 때는 작은 것이었다. 종이 위에 꺼내놓으면 크기가 달라졌다.

둘째 날도 찢었다. 셋째 날에 쓴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더 이상 쓰면 처음보다 나아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접었다. 봉투 없이. 손 안에 들어갈 크기로 네 번 접었다.

건넸다. 우편이 아니라 직접.

버스 정류장이었다. 월요일 오후. 4월인데 바람이 있었다. 정류장 옆 가로수 밑에 꽃잎이 떨어져 있었고,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같이 버스를 기다리다가 — 아니, 기다리는 척하면서. 가방을 열었다. 손이 가방 안에서 접힌 종이를 찾았다. 손가락 끝에 모서리가 닿았다. 꺼냈다.

그 사람의 얼굴을 보지 않고 내밀었다. 팔이 짧게 움직였다. 그것뿐이었다.

그 사람 손이 닿았다. 종이가 내 손에서 그 사람 손으로 옮겨가는 동안 — 찰나였다 — 손가락이 스쳤다. 스친 것인지, 종이를 잡은 것인지. 종이의 무게가 빠져나갔다. 접힌 종이 한 장이 얼마나 가벼운지 나는 그 순간에 알았다. 그 전에는 몰랐다. 삼 일 동안 그렇게 무거웠던 것이.

버스가 왔다. 나는 탔다.

창문 밖을 보지 않았다. 보면 안 될 것 같았다. 표정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떻게 읽을지 알게 될 것 같았고, 알게 되면 — 그것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버스가 출발했다. 좌석에 앉았다. 손이 비어 있었다. 아까까지 종이를 쥐고 있던 손. 손바닥 안에 접힌 모서리의 감촉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나는 모른다.

그 사람이 편지를 어떻게 읽었는지.

어떤 얼굴이었는지.

읽고 나서 뭔가가 달라졌는지.

그 사람 안에서 내가 건넨 것이 어디로 갔는지.

그냥 모른다.


4장

비가 계속 왔다.

나는 일기를 읽었다. 앉은 자리에서 다음 페이지, 다음 페이지. 작업 목록은 옆에 있었다. 보지 않았다. 바깥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 3월의 오후 빛이 짧았다. 방 안에는 천장 형광등을 켜지 않아서 창문에서 들어오는 것만 있었다. 빗줄기 사이로 오는 회색빛.

일기 쓰는 사람의 4월은 계속됐다.

4월 22일. 그 사람을 보았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은 것 같았다. 아니면 내가 못 본 것인지도.

나는 멈췄다.

아니면 내가 못 본 것인지도.

아는 감각이었다.

등이 의자에 닿아 있었다. 그것을 의식했다. 호흡이 한 번 깊어졌다. 비가 유리를 두드렸다.

11년 전이었다. 그 사람이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 말 전에 있는 것들이 있었다. 시선이 조금 더 오래 머무는 것. 웃는 타이밍이 조금 빠른 것. 입이 열렸다가 닫히는 것. 나는 그것을 봤다. 보이지 않는 척한 것인지, 진짜로 못 본 것인지 — 지금도 모른다.

창밖의 빛이 더 줄었다. 페이지 위 글씨가 조금 어두워졌다.

나는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5장

일기가 5월로 넘어가 있었다.

5월 1일. 그 사람이 내가 쓴 편지를 아직 갖고 있다. 봤다. 가방에서 꺼내다가 다시 넣었다. 나를 보지 않을 때 봤다. 아직 갖고 있다는 것이 뭘 의미하는지 모르겠다. 버리지 않은 것과 간직한 것은 다른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페이지 위에 손가락을 얹었다. 마지막 문장 밑에.

버리지 않은 것과 간직한 것.

비가 유리를 두드렸다. 방 안이 어두워져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몰랐다. 형광등을 켜지 않고 앉아 있었다는 것을 비의 소리가 알려줬다.

그 사람도 내 것들을 버리지 않았다. 그 사람이 간 다음에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비상 연락처에 내 이름이 있었다. 오래 전에 쓴 것이었다. 나는 갔다. 쪽지들, 사진 몇 장, 작은 상자. 받아왔다.

집 어딘가에 있다.

간직하는 것인지, 버리지 못하는 것인지 — 나는 아직 모른다.

일기장도 마찬가지였다. 책장 맨 아래 칸에 눌려 있었다. 버린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누가 간직하려 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냥 여기 있었다.

나는 다음 페이지를 넘겼다. 손가락에 종이가 닿았다. 아까보다 종이가 얇아진 것 같았다.


6장

5월 22일. 그 사람이 내 편지를 읽었다. 그건 안다. 다음날 봤을 때 표정이 달랐다. 뭔가를 알고 있는 사람의 표정. 근데 그게 뭔지 모르겠다. 편지에 쓴 것이 닿았는지. 닿았다면 어디에 닿았는지. 그 사람 안 어딘가에서 내가 쓴 말이 뭔가를 움직였는지.

그것만 모르겠다. 나머지는 다 괜찮다.

나는 멈췄다.

손가락이 페이지 위에 멈춰 있었다. 나머지는 다 괜찮다. 이 문장 위에.

비가 유리에 부딪혔다. 소리가 달라져 있었다 — 아까보다 세졌다. 방 안이 어두웠다. 일기장 위에 창문에서 오는 빛만 남아 있었다.

나는 괜찮지 않았다.

차 안이었다. 병원 주차장. 3월, 11년 전. 아스팔트에 비가 내렸다. 그 사람이 치료를 받고 나왔다. 내가 차를 대고 기다리고 있었다. 핸들 위에 손을 올려놓고 앞을 보고 있었다. 조수석 문이 열렸다. 그 사람이 탔다. 문이 닫혔다. 차 안에 소독약과 비 냄새가 섞였다.

잠깐 아무 말도 없었다.

와이퍼가 움직이고 있었다. 끄지 않았다. 규칙적인 소리가 차 안을 채웠다.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 사람이 말했다.

“나 사실…”


7장

손이 라디오를 켰다.

차에 타면 라디오를 켜는 것이 습관이었다. 그날도 손이 먼저 움직였다. 버튼을 누르는 데 1초가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음악이 흘렀다. 차 안을 채웠다. 그 사람이 잠깐 멈추는 것이 느껴졌다 — 숨이 멈춘 것인지, 말이 멈춘 것인지. 잠깐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이 지나갔다.

“다음에 얘기해.”

그 사람이 말했는지, 내가 말했는지. 둘 중 하나였다. 11년이 지나면 이런 것들이 섞인다.

차가 출발했다. 와이퍼가 움직이고 있었다. 비가 앞유리에 닿았다가 밀려갔다.

다음은 오지 않았다.

그 사람이 말하지 않기로 한 것인지, 내가 듣지 않기로 한 것인지. 선택한 것인지, 선택하지 않았는데 손이 먼저 움직인 것인지. 그것도 모른다. 11년이 지났는데도.

나중에 — 많이 나중에, 그 사람이 없어진 다음에 — 나는 그날 어떤 노래가 흘러나왔는지 생각하려 했다. 찬찬히. 천천히. 라디오에서 처음 나온 소리가 무엇이었는지. 멜로디가 있었는지. 가사가 있었는지.

그것만 기억나지 않는다.

다른 건 다 기억난다. 그 사람의 손이 무릎 위에 놓여 있던 것. 차창에 살짝 김이 서린 것. 라디오를 켜는 순간 그 사람이 잠깐 멈춘 것. 와이퍼 소리. 비 냄새. 핸들의 온도.

노래만 없다. 그 자리만 비어 있다.


8장

일기의 마지막 항목이 있었다.

6월 3일. 그 사람이 어떻게 읽었는지 생각했다. 그것만 모르겠다. 나머지는 다 괜찮다.

그 다음 페이지가 비어 있었다.

날짜도 없었다. 문장도 없었다. 줄만 있었다. 하얀 줄. 더 이상 쓰지 않은 것이었다. 이 일기는 여기서 끝난 것이었다.

나는 빈 페이지를 오래 보았다.

손가락 끝에 종이가 닿아 있었다.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종이. 같은 종이인데, 글씨가 있는 페이지와 무게가 달랐다. 아니 — 달라 보였다.

라디오 소리.

나 사실…

비가 유리를 두드렸다.

그 사람이 무릎 위에 손을 내려놓고 있었다. 잠깐 멈췄다. 그 순간이 지나갔다.

나머지는 다 괜찮다 — 라고 나는 쓰지 못한다.

손이 먼저 움직였어도, 내가 한 것이다.

그 사람 안에 뭔가가 남아 있었다. 나는 그것을 듣지 않았다. 그 사람은 갔다.

나는 일기를 덮었다. 표지의 갈색이 방 안의 어둠 속에서 거의 보이지 않았다.


9장

비가 그쳤다.

창 밖이 밝아져 있었다. 먹구름 사이로 오후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방 안에 빛이 닿자 먼지가 보였다. 공기 속에 떠 있는 것들. 환기했는데도 아직 남아 있었다.

나는 일기를 책장 위에 올려놓았다. 처분할 것 칸에 넣지 않았다. 남길 것 칸에도 넣지 않았다. 그냥 책장 위에. 갈색 표지가 빛을 받아 조금 밝아 보였다.

작업을 마쳤다. 목록을 확인했다. 장갑을 벗었다. 손을 털고 문을 닫았다. 열쇠를 관리사무소에 돌려줬다.

계단을 내려가면서 1층에 신발이 아직 있는 것이 보였다. 오전에 봤을 때와 같은 자리. 짝이 약간 벌어져 있었다. 누군가 치워야 한다. 오늘은 아니다.

밖에 나왔다. 비가 그친 후의 공기가 차갑고 젖어 있었다. 아스팔트에 물이 고여 있었다. 가로등이 켜져 있었다 — 3월이니까 벌써 이른 저녁이었다. 물웅덩이에 가로등 빛이 비쳤다.

집으로 오는 길이었다. 아니면 집에 돌아온 뒤 어느 순간이었다.

손이 핸드폰을 집었다.


달 드림  ·  dal.lunar.moo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