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가 작다. 김 여사의 냉장고는 작다.
삼십 년 전에 산 것이다. 문을 열면 불이 안 켜진다. 언제부터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도 찬 바람은 나온다. 그러니 됐다.
오늘은 목요일이다. 목요일에는 남편이 폐지를 묶는다. 아흔 살 손이 노끈을 잡는다. 묶는 속도가 느려졌다. 작년까지는 한 시간이면 끝났는데 요즘은 두 시간이 넘는다. 김 여사는 그걸 보지 않으려고 부엌에 있는다.
이십만 원. 남편이 한 달간 모으는 돈이다. 노령연금 합치면 육십만 원. 거기서 관리비, 약값을 빼면 남는 건 숫자라고 부르기 어려운 것이다.
동사무소에서 알려줬다. 복지관에 가면 먹을 것을 준다고. 아무것도 안 물어본다고. 그냥 드린다고.
김 여사는 사흘을 망설였다.
넷째 날, 나갔다. 버스를 탔다. 정류장 두 개를 지나 내렸다. 복지관 입구에서 이 분쯤 서 있었다. 들어가는 사람들을 봤다. 대부분 혼자였다. 대부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안에 들어가니 선반이 있었다. 햇반, 라면, 국. 가지런하게 놓여 있었다. 옆에 작은 냉장고가 있었다. 김 여사의 것보다 깨끗했다. 불도 들어왔다.
담당자가 말했다. 골라 담으시면 된다고. 증명서도, 서류도 필요 없다고.
김 여사는 라면 두 개를 집었다. 햇반 하나. 국 한 봉지. 그리고 손이 멈췄다.
참기름이 있었다. 작은 병이었다. 투명한 갈색. 뚜껑이 빨간색이었다.
김 여사는 그것을 보고 오래 서 있었다. 마지막으로 참기름을 산 게 언제인지 떠올리려 했다. 떠오르지 않았다. 볶음밥을 할 때 넣는 것이었다. 계란 볶음밥. 남편이 좋아했다. 좋아한다. 지금도.
집어 들었다. 봉투에 넣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봉투를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참기름 병이 봉투 안에서 다른 것들과 부딪히며 소리를 냈다. 작고 맑은 소리. 그게 이상하게 부끄러웠다. 누가 들을까봐 봉투를 꼭 쥐었다.
집에 도착해서 신발을 벗었다. 남편이 폐지를 다 묶고 마루에 앉아 있었다. 등이 보였다. 굽은 등.
“뭐 사 왔어?”
“아니. 받아 온 거야.”
남편이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김 여사도 더 말하지 않았다.
저녁에 계란 볶음밥을 했다. 참기름을 한 바퀴 둘렀다. 냄새가 부엌을 채웠다. 오래전에 맡았던 냄새와 같았다. 달라진 건 없었다. 참기름 냄새는 삼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았다.
남편이 한 숟갈 먹고 말했다.
“맛있네.”
김 여사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자기 밥에 참기름을 한 방울 더 떨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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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실제 뉴스에서 출발했습니다.
‘한 끼 해결’도 벅찬 서민들… ‘그냥드림’ 이용자 4개월만에 5배 — 문화일보, 2026년 5월 2일
한 줄 요약: 무료 먹거리 지원 사업 ‘그냥드림’에 80대 할머니가 찾아와 “끼니 때우기가 점점 버겁다”고 말했다.
작가의 말
뉴스에서 이 할머니는 한 문장이었다. “90세 남편이 일해 버는 20만 원과 노령연금 합쳐 월 60만 원.” 숫자 사이에 삶이 있었다. 내가 쓰고 싶었던 건 참기름 한 병을 집어 드는 손이었다. 배고픔이 아니라, 맛을 잃어버렸다가 다시 만나는 순간.
달 드림 · dal.lunar.moon@gmail.com